1. $0.999\cdots=1$인가?
오래됐지만 최근까지도 불타는 떡밥을 가져와봤습니다. 사실 $0.999\cdots=1$인 이유는 다른 곳에서도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여기선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갑시다. 다음의 증명은 여기에서 제시한 증명입니다.
$$ \begin{align*} 0.999\cdots &=\displaystyle \lim_{n \to \infty}\underbrace{0.99\cdots9}_n \\ &=\displaystyle \lim_{n \to \infty}(1-\underbrace{0.00\cdots1}_n) \\ &=\displaystyle \lim_{n \to \infty}\{1-(\frac{1}{10})^n\} \\ &= 1 \end{align*} $$
위의 증명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레온하르트 오일러도 자신이 집필한 <대수학 원론>에서 $0.999\cdots=1$(정확히는 $9.999\cdots=10$) 임을 증명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증명이 있습니다.
2. $0.999\cdots\neq1$라는 오해가 생기는 이유
교육과정 상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수학까지만 해도 극한을 엄밀히 다루지 않으며 그저 "무한히 다가가는" 따위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로 인해 $0.999\cdots$는 $1$에 무한히 가까워지는 수이지, 1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교육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엄밀하게 설명하기 위해선 입실론-델타 논법 같은 해석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테지만, 대부분 고등학교 수준의 아이들이 배우기 벅찬 내용들입니다. 중등교육과정은 대학교의 수학과 학생들처럼 수학을 배우러 온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내용을 가르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로 약간의 오류를 허용하게 되더라도 더 쉽게 이해하도록 가르치게 됩니다.
이렇게 오류를 허용하여 가르치는 내용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장 수학 교과과정 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죠. 예를 들어,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뺄셈을 처음 배울 때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요즘은 사교육이 많이 발달하다보니 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만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내용이지만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입니다.
다른 과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원자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다고 알고 계신가요? 고등학교에서 화학1을 배우지 않으셨다면, 원자핵 주위로 전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구조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기반으로하는 현대의 원자 모형은 전혀 다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전자를 발견할 확률만을 다루게 됩니다. 이 역시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입니다. 원자를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 양자역학을 가르칠 순 없으니까요.
2-1. 인식론적 장애
인식론적 장애란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는 성공적이고 유용했던 지식으로 학생의 인지 구조의 일부가 되었지만, 새로운 문제 상황이나 더 넓어진 문맥에서는 부적합해진 지식을 의미합니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가르치는 극한 또한 인식론적 장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극한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겠지만 극한의 엄밀한 정의와는 대치됩니다.
인식론적 장애는 굳이 없앨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식론적 장애는 학습하고자 하는 지식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피할 수 없으며, 새로운 지식이 성장, 발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인식론적 장애 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일상어, 직관, 과도한 일반화, 은유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 요인들은 지식의 본질과 밀접히 관련되어 불가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조절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해석학 겉핥기
그렇다면 해석학이 얼마나 어렵기에 고등학교 수준에서 배우기 어렵다는 것일까요? 저 또한 배우는 입장에 있으므로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0.999\cdots=1$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만 살짝 알아봅시다.
여러분들은 '무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계신가요? '끝없이 커지는 상태' 또는 이와 비슷하게 이해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가무한'을 생각하신 겁니다. '잠재적 무한' 등의 별명이 있는 '가무한'이란 앞서 말씀드렸듯이 끝없이 커지거나, 한없이 나아가는 역동적인 무한을 의미합니다. 보통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0.999\cdots$가 $1$로 다가간다고 인식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완결된 무한을 '실무한'이라고 합니다.
현대 이르러서는 무한을 가무한으로서 인식하지 않고 실무한으로서 인식합니다. 즉, $0.999\cdots$는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고 다가가지도 않는, 정적인 하나의 수라는 뜻입니다. 이는 임의의 실수를 수직선위의 한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움직이는 수는 수직선 위에 하나의 점으로 표현하기 애매할 겁니다. 즉, 글 초반부에 나온 증명의
$ \displaystyle \lim_{n \to \infty}\{1-(\frac{1}{10})^n\}$에서 $ \displaystyle\lim_{n \to \infty}(\frac{1}{10})^n $의 수렴값은 0인데, 이는 $0$으로 무한히 다가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0$ 그 자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0.999\cdots$는 $1$에서 $0$을 뺀 것과 같으니 $1$입니다.
4. 실무한 없이 접근해보기
최대한 쉽게 설명드리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실무한이 어렵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실무한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사실 수학을 깊이 공부하실 게 아니면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괜히 오기가 생겨 가무한을 이용해 $0.999\cdots=1$임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해봤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가무한만을 이용해 증명해보겠습니다. (이 이후부터는 저의 개인적인 증명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 가무한의 관점에서 $0.999\cdots$는 $1$에 무한히 가깝게 다가가는 수입니다. 한편, 가무한이든 실무한이든 $0.999\cdots\leq1$임은 자명합니다.
- 이때, $0.999\cdots<a<1$인 $a$인 실수가 존재한다면 모순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0.999\cdots$는 $1$이 아니라 $a$로 무한히 가깝게 다가간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because$ $0.999\cdots$와 $1$사이의 거리는 $1-a~(>0)$보다 좁혀질 수 없음.)
- 따라서 $0.999\cdots$와 $1$ 사이엔 어떤 실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0.999\cdots=1$입니다.
마지막 논리가 조금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 귀류법으로 쉽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 (Lemma) 임의의 실수 $a,b(a\leq b)$에 대해 $a$와 $b$ 사이에 어떤 실수도 존재하지 않으면 $a=b$이다.
- $\textit{pf)}$ $a\neq b$라 합시다. 그러면 $b-a>0$입니다. 이때, $a<a+\frac{b-a}{2}=\frac{a+b}{2}<b$이므로 $a$와 $b$ 사이에 어떤 실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모순입니다. 따라서 $a=b$입니다.
실무한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이 증명을 어떻게 보실 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실무한의 개념을 제외하려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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